Jealous Guy  
Front Page
Tag | Location | Media | Guestbook | Admin   
 
그것 It / 스티븐 킹, 1986


 제 1권

 여섯 통의 전화(1985년)

 스탠리 유리스, 목욕하다

  형광등 불빛. 매우 밝았다. 그늘진 곳은 없었다. 좋든 싫든 모든 것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욕조에 분홍색 물이 담겨 있었다. 스탠리는 욕조 끄트머리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머리가 뒤로 젖혀져 검은색의 짧은 머리카락이 어깻죽지까지 닿은 상태였다. 퀭한 두 눈에 아직 시력이 남아 있다면 그녀의 모습은 거꾸로 보였을 것이다. 입은 훤히 열린 문과 비슷했다. 얼굴 표정은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얼어붙어 있는 것 같았다. 면도날 상자가 욕조 가장자리에 놓여 있었다. 팔뚝 안쪽,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갈라지고 손목 아랫부분이 다시 가로로 잘려 T자 모양으로 피가 흘러내렸다. 무정한 불빛이 찢겨진 상처를 검붉게 비추었다. 그녀는 남편의 드러난 힘줄과 인대가 값싼 쇠고기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크롬 도금이 반짝이는 수도꼭지에 물방울이 맺혔다. 불룩해졌다. 임부의 배처럼. 물방울이 빛났다. 떨어졌다. 또옥.

  스탠리는 오른쪽 집게 손가락에 피를 묻혀 욕조 위 파란색 타일에다 흔들리는 두 개의 큼지막한 활자를 써 놓았다. 두 번째 문자가 끝나는 지점에서 손가락 자국이 갈지자로 나 있었다. 그녀는 글자를 쓰고 미끄러지듯 욕조로 떨어진 남편의 손이 수면에 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의식을 잃는 순간, 그가 이 세상에 남긴 최후의 유서였다. 글자 두 개가 그녀를 향해 울부짖는 것 같았다.

  IT(그것)

  물방울이 욕조로 떨어졌다.

  똑.

  그때였다. 퍼트리셔는 마침내 목소리를 되찾았다. 그녀는 남편의 시체와 번뜩이는 눈을 바라보면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p.97



  27년 전의 약속. 잊혀졌던 그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 죽음을 선택해야만 했던 스탠리.
  11살, 그 어린 친구들과 함께 맞섰던 공포와 다시 대면하는 순간 피는 얼어붙고, 심장은 터져나갈 것이니. 그러나, 다시 한 번 힘을 모아 그것을 없애야 한다.
  그것이 그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무대에서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는 38살의 왕따 클럽. 빌, 벤, 비벌리, 에드, 마이클, 리처드, 스탠리.

  스티븐 킹의 장편소설, 그것(IT). 내가 읽어 본 그의 장편 소설 중에 이만한 스케일의 작품도 없었고, 이만큼 무서운 작품도 없었으며, 이만큼 잘 씌여진 작품도 없었다. 유래없이 긴 호흡으로 27년의 시간을 오가며 친구들의 이야기와 데리라는 도시의 이야기를 휘청휘청 뛰어넘으면서도, 그 유기적인 연결과 식상하지 않은 표현에는 아낌없는 칭찬이 필요하다.
  양장본으로 세 권. 1800여 페이지의 장편 소설. 여름밤은 다 지나가고 없다지만, 긴긴 밤, 잠 못드는 밤으로 기꺼이 여러분을 초대해 줄 수 있다.




 제 3권.

 빌 덴브로 번개처럼 달리다 2

  자, 이제 서둘러 떠나자. 마지막 햇살이 남아 있을 때, 데리를, 기억을 떠나......, 다만 욕망만은 남겨 두자. 유년 시절과 그 때의 믿음을 대신해 가장 빛나는 조연처럼 남아, 우리가 서로에게 잊혀진 존재가 된다 해도 우리들의 눈동자를 환히 채우고, 한밤이 대기에 미풍을 불러올 테니까.

  떠나되 웃음을 잃지 말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로큰롤에 몸을 맡겨도 좋고, 불러낼 수 있는 용기와 신념을 온전히 품고 곧장 삶 속으로 걸어가자. 진실하게, 당당하게, 꿋꿋하게.

  이제 남은 것은 어둠 뿐이다.

p.597



  진실하게, 당당하게, 꿋꿋하게.


살인자의 건강법 / 아멜리 노통, 1992

  트리플 포르토 플립을 한 잔 주문하고 나서 기운을 차린 그는 끔찍한 경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그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고래 뱃속에서 나온 요나가 바로 그런 냄새를 풍겼을 터였다. 기자들은 그와 함께 있기가 거북했다. 그 자신도 악취를 의식한 걸까? 요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완전히 고래 뱃속이더군요! 정말이지, 영락없는 고래 뱃속이었어요! 어둡고, 더럽고, 무섭고, 답답하고..."
  "악취는요? "
  "악취만 나지 않더군요. 문제는 타슈였어요! 타슈 말입니다! 정말 독사같더군요, 그 작자! 간덩이가 부어도 유분수지! 위도 그렇게 탱탱 부풀어 있겠죠! 박쥐처럼 음험한 데다 쓸개즙처럼 쓴 소리만 해대고! 흘깃 바라보기만 하는데도 나를 집어삼켜서 파시스트적인 소화효소로 분해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 中略 -

  "녹음한 거 들어봐도 돼요?"

  경건한 침묵 속에 녹음기가 진실을 펼쳐보였다. 하지만 부분적인 진실이었다. 평온한 안색, 어둠, 무표정하고 두툼한 손, 활기라곤 없는 묵중한 분위기 등 불쌍한 기자로 하여금 겁먹은 자의 악취를 풍기게 만든 모든 요소들이 삭제되어 있었으니까. 다 듣고 난 기자들은 개나 소나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작가를 편들고 나섰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는 하나같이 피해자에게 이러쿵저러쿵 설교를 늘어 놓았다.

  "에이, 화를 자초했네요! 교과서식으로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다니. 선생이 왜 화를 냈는지 알 만해요."
  "왜 선생을 소설 속 등장인물과 동일시하려고 했어요? 너무 유치하잖아요."
  "게다가 약력이나 따지고. 요즘 사람들은 그런 것에 신경 안써요. 프루스트의 '생트 뵈브를 반박함'도 안 읽어 봤어요?"
  "정말 실수했어요. 작가 인터뷰에 이골이 났다고 이야기하다니!"
  "불손했죠. 그렇게 못생긴 건 아니라니요!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지. 한심한 사람 같으니!"
  "메타포는 또 어떻고! 정말 제대로 걸린거지. 마음 아프게 하고 싶진 않지만, 미움 살 짓을 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네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타슈 선생 같은 천재 앞에서 부조리 운운 하다니요! 어떻게 그런 소갈머리 없는 짓을!"
  "어쨌든 한 가지는 밝혀졌네요. 인터뷰는 실패했지만, 타슈선생이 정말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 말이에요! 그 넘치는 지성이라니!"
  "청산유수같은 언변하며!"
  "그렇게 뚱뚱한 데도 얼마나 섬세한지!"
  "심술 속에 번뜩이는 지성하며!"

  "심술궂다는 건 인정하죠?" 불쌍한 기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물에 빠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뭐 별로. 제가 보기엔 그래요."
  "형한테는 친절하던데요."
  "유머감각도 있고. 형이 바보 같은 말을 할 때, 거리낌 없이 마구잡이로 욕을 퍼부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았잖아요. 대신 뼈 있는 말을 구사했죠. 형은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테지만."
  "연작이 봉황의 뜻을 어찌 알리오."

  다들 불쌍한 기자를 갖고 놀았다. 기자는 트리플 포르토 플립을 한 잔 더 주문했다.

p.31 ~ 34


  아멜리 노통의 데뷔작. '적의 화장법' 보다 두 배 정도 길고, 등장인물이 더 많으며, 조금 더 흥미로운.
  '프레텍스라 타슈'(-주인공)와 '텍스토르 텍셀(-'적의 화장법'의 등장인물)'간의 유사성이 보인다. '텍스트'로서의 이름 뿐만 아니라, 내 안의 적, 또는 나를 닮은 적의 모습이 '텍스트'로서 나타나는.
  그럼에도 이 작가에 대해 그다지 호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기자와의 대담형식을 통한 이야기 구성. 지나친 반복은 조금 지루하다.


스노우 크래쉬 / 닐 스티븐슨, 1996


 
 어느 순간, 엔키는 수메르가 판에 박힌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같은 메만을 수행했죠.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생각도, 아니 스스로 생각이란 걸 할 수도 없었어요.

...

  그래서 그는 <엔키의 남셥>이란 것을 만든 겁니다. 남셥은 메타바이러스가 퍼지는 것과 똑같은 통로로 전파되는 항체죠. 그것은 두뇌의 심층 구조로 들어가 머리속을 다시 프로그램합니다.
그런 까닭으로 해서 아무도 더 이상 수메르어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죠. 심층구조에 기초한 다른 어떤 언어도 마찬가지구요. 심층구조로부터 차단된 우리는 서로 전혀 다른 언어들을 새로 개발해내게 되죠. 메는 이제 더 이상 작용을 하지 못했고, 새로운 메를 쓰는 일도 불가능했습니다. 더불어 메타바이러스가 퍼져나가는 것도 막을 수가 있었지요.

...

  그것은 이성적인 종교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신이나 선, 혹은 악 같은 개념들을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바벨이란 이름이 생겨나게 된 겁니다. 직역하면 바벨은 <신에 이르는 문>이라는 뜻이죠. 다시 말해 신이 <우리 인간과 교통할 수 있는 문>이란 의미입니다. 바벨은 우리 마음에의 <문>이었죠. 엔키의 남셥으로 인해 열리고 우리를 메타바이러스로부터 탈출하게 해준 <문>이었죠. 우리는 이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겁니다. 우리를 유물론적인 세계로부터 이원론적인 세계로 - 다시말해 이항논리의 세계로 - 올라가게 해 준 겁니다. 물질적인 재료와 정신적인 재료가 공존하는.

제 2권.  p.251 ~ 252



  바벨사건에 대한 해커적 재구성의 시도. 충분히 흥미롭고, 설득력있는 나름대로의 답변.
  SF가 요구하는 미래상의 제시와 더불어 생동감있는 캐릭터, 소설 속 주제의식의 융화 모두 합격점!

* 우리가 쓰고 있는 '아바타'라는 용어는 이 소설에서 태동하였다고.


BLOG main image
난 지나간 이야기들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내 심장이 빠르게 뛰던 그 때의 이야기를. 당신을 아프게 하려 했던 게 아니예요. 내가 당신을 눈물짓게 했다면 미안해요. 난 당신을 아프게 하려 했던 게 아닌걸요.
 Notice
Notice : Jealous Guy
 Category
전체 (8)
書標 (8)
殘香 (0)
 TAGS
존 그리샴 살인자의 건강법 불법의 제왕 스노우 크래쉬 레이먼드 챈들러 이언 매큐언 Jealous Guy 아멜리 노통 필립 말로 하이윈도
 Calendar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Entries
 Recent Comments
 Recent Trackbacks
 Archive
 Link Site
 Visitor Statistics
Total :
Today :
Yesterday :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