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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It / 스티븐 킹, 1986

petasos 2007. 12. 20. 17:43


 제 1권

 여섯 통의 전화(1985년)

 스탠리 유리스, 목욕하다

  형광등 불빛. 매우 밝았다. 그늘진 곳은 없었다. 좋든 싫든 모든 것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욕조에 분홍색 물이 담겨 있었다. 스탠리는 욕조 끄트머리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머리가 뒤로 젖혀져 검은색의 짧은 머리카락이 어깻죽지까지 닿은 상태였다. 퀭한 두 눈에 아직 시력이 남아 있다면 그녀의 모습은 거꾸로 보였을 것이다. 입은 훤히 열린 문과 비슷했다. 얼굴 표정은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얼어붙어 있는 것 같았다. 면도날 상자가 욕조 가장자리에 놓여 있었다. 팔뚝 안쪽,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갈라지고 손목 아랫부분이 다시 가로로 잘려 T자 모양으로 피가 흘러내렸다. 무정한 불빛이 찢겨진 상처를 검붉게 비추었다. 그녀는 남편의 드러난 힘줄과 인대가 값싼 쇠고기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크롬 도금이 반짝이는 수도꼭지에 물방울이 맺혔다. 불룩해졌다. 임부의 배처럼. 물방울이 빛났다. 떨어졌다. 또옥.

  스탠리는 오른쪽 집게 손가락에 피를 묻혀 욕조 위 파란색 타일에다 흔들리는 두 개의 큼지막한 활자를 써 놓았다. 두 번째 문자가 끝나는 지점에서 손가락 자국이 갈지자로 나 있었다. 그녀는 글자를 쓰고 미끄러지듯 욕조로 떨어진 남편의 손이 수면에 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의식을 잃는 순간, 그가 이 세상에 남긴 최후의 유서였다. 글자 두 개가 그녀를 향해 울부짖는 것 같았다.

  IT(그것)

  물방울이 욕조로 떨어졌다.

  똑.

  그때였다. 퍼트리셔는 마침내 목소리를 되찾았다. 그녀는 남편의 시체와 번뜩이는 눈을 바라보면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p.97



  27년 전의 약속. 잊혀졌던 그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 죽음을 선택해야만 했던 스탠리.
  11살, 그 어린 친구들과 함께 맞섰던 공포와 다시 대면하는 순간 피는 얼어붙고, 심장은 터져나갈 것이니. 그러나, 다시 한 번 힘을 모아 그것을 없애야 한다.
  그것이 그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무대에서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는 38살의 왕따 클럽. 빌, 벤, 비벌리, 에드, 마이클, 리처드, 스탠리.

  스티븐 킹의 장편소설, 그것(IT). 내가 읽어 본 그의 장편 소설 중에 이만한 스케일의 작품도 없었고, 이만큼 무서운 작품도 없었으며, 이만큼 잘 씌여진 작품도 없었다. 유래없이 긴 호흡으로 27년의 시간을 오가며 친구들의 이야기와 데리라는 도시의 이야기를 휘청휘청 뛰어넘으면서도, 그 유기적인 연결과 식상하지 않은 표현에는 아낌없는 칭찬이 필요하다.
  양장본으로 세 권. 1800여 페이지의 장편 소설. 여름밤은 다 지나가고 없다지만, 긴긴 밤, 잠 못드는 밤으로 기꺼이 여러분을 초대해 줄 수 있다.




 제 3권.

 빌 덴브로 번개처럼 달리다 2

  자, 이제 서둘러 떠나자. 마지막 햇살이 남아 있을 때, 데리를, 기억을 떠나......, 다만 욕망만은 남겨 두자. 유년 시절과 그 때의 믿음을 대신해 가장 빛나는 조연처럼 남아, 우리가 서로에게 잊혀진 존재가 된다 해도 우리들의 눈동자를 환히 채우고, 한밤이 대기에 미풍을 불러올 테니까.

  떠나되 웃음을 잃지 말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로큰롤에 몸을 맡겨도 좋고, 불러낼 수 있는 용기와 신념을 온전히 품고 곧장 삶 속으로 걸어가자. 진실하게, 당당하게, 꿋꿋하게.

  이제 남은 것은 어둠 뿐이다.

p.597



  진실하게, 당당하게, 꿋꿋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