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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건강법 / 아멜리 노통, 1992
petasos
2007. 12. 20. 17:39
트리플 포르토 플립을 한 잔 주문하고 나서 기운을 차린 그는 끔찍한 경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그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고래 뱃속에서 나온 요나가 바로 그런 냄새를 풍겼을 터였다. 기자들은 그와 함께 있기가 거북했다. 그 자신도 악취를 의식한 걸까? 요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완전히 고래 뱃속이더군요! 정말이지, 영락없는 고래 뱃속이었어요! 어둡고, 더럽고, 무섭고, 답답하고..."
"악취는요? "
"악취만 나지 않더군요. 문제는 타슈였어요! 타슈 말입니다! 정말 독사같더군요, 그 작자! 간덩이가 부어도 유분수지! 위도 그렇게 탱탱 부풀어 있겠죠! 박쥐처럼 음험한 데다 쓸개즙처럼 쓴 소리만 해대고! 흘깃 바라보기만 하는데도 나를 집어삼켜서 파시스트적인 소화효소로 분해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 中略 -
"녹음한 거 들어봐도 돼요?"
경건한 침묵 속에 녹음기가 진실을 펼쳐보였다. 하지만 부분적인 진실이었다. 평온한 안색, 어둠, 무표정하고 두툼한 손, 활기라곤 없는 묵중한 분위기 등 불쌍한 기자로 하여금 겁먹은 자의 악취를 풍기게 만든 모든 요소들이 삭제되어 있었으니까. 다 듣고 난 기자들은 개나 소나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작가를 편들고 나섰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는 하나같이 피해자에게 이러쿵저러쿵 설교를 늘어 놓았다.
"에이, 화를 자초했네요! 교과서식으로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다니. 선생이 왜 화를 냈는지 알 만해요."
"왜 선생을 소설 속 등장인물과 동일시하려고 했어요? 너무 유치하잖아요."
"게다가 약력이나 따지고. 요즘 사람들은 그런 것에 신경 안써요. 프루스트의 '생트 뵈브를 반박함'도 안 읽어 봤어요?"
"정말 실수했어요. 작가 인터뷰에 이골이 났다고 이야기하다니!"
"불손했죠. 그렇게 못생긴 건 아니라니요!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지. 한심한 사람 같으니!"
"메타포는 또 어떻고! 정말 제대로 걸린거지. 마음 아프게 하고 싶진 않지만, 미움 살 짓을 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네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타슈 선생 같은 천재 앞에서 부조리 운운 하다니요! 어떻게 그런 소갈머리 없는 짓을!"
"어쨌든 한 가지는 밝혀졌네요. 인터뷰는 실패했지만, 타슈선생이 정말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 말이에요! 그 넘치는 지성이라니!"
"청산유수같은 언변하며!"
"그렇게 뚱뚱한 데도 얼마나 섬세한지!"
"심술 속에 번뜩이는 지성하며!"
"심술궂다는 건 인정하죠?" 불쌍한 기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물에 빠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뭐 별로. 제가 보기엔 그래요."
"형한테는 친절하던데요."
"유머감각도 있고. 형이 바보 같은 말을 할 때, 거리낌 없이 마구잡이로 욕을 퍼부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았잖아요. 대신 뼈 있는 말을 구사했죠. 형은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테지만."
"연작이 봉황의 뜻을 어찌 알리오."
다들 불쌍한 기자를 갖고 놀았다. 기자는 트리플 포르토 플립을 한 잔 더 주문했다.
p.31 ~ 34
아멜리 노통의 데뷔작. '적의 화장법' 보다 두 배 정도 길고, 등장인물이 더 많으며, 조금 더 흥미로운.
'프레텍스라 타슈'(-주인공)와 '텍스토르 텍셀(-'적의 화장법'의 등장인물)'간의 유사성이 보인다. '텍스트'로서의 이름 뿐만 아니라, 내 안의 적, 또는 나를 닮은 적의 모습이 '텍스트'로서 나타나는.
그럼에도 이 작가에 대해 그다지 호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기자와의 대담형식을 통한 이야기 구성. 지나친 반복은 조금 지루하다.